운동

초보자를 위한 달리기 가이드 - 달리는 의사회 이동윤회장

조코디 2013. 9. 5. 13:20


등록 : 2013.09.03 18:33수정 : 2013.09.04 11:25



[건강과 삶] ‘달리는 의사회’ 이동윤 회장

“왜 조금만 달려도 숨이 차고 뛰기 싫어지죠?”

새벽 5시 반부터 이미 1시간 이상 한강 고수부지를 달려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난 마라톤 고수에게 묻고 싶은 말이었다. 직업은 외과 의사. 이미 마라톤 풀코스를 150여차례 달린 초절정 아마추어 마라톤 고수이다.

달리면 운동근육에 혈액 공급이 집중되면서 콩팥으로 가는 내장 혈관이 수축되고, 체내 젖산이 축적됩니다. 그러면 혈액은 산성화되면서 호흡이 곤란해지는 것입니다.” 아주 의학적이다. 그래서 또 물었다.

“계속 달리면 그런 고통이 조금씩 사라지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계속 달리면 땀이 납니다. 그 땀은 혈액 내 축적된 젖산을 배출시킵니다. 그래서 혈액 내 젖산 농도가 감소합니다. 호흡은 순조로워지고 피로감도 사라집니다. 땀을 흘리며 운동하면 컨디션이 좋아지는 이유입니다.”

명쾌하다. 그의 답이 명쾌한 만큼 달리는 모습도 가볍기만 하다.

1952년생이니 환갑도 지난 나이. ‘달리는 의사회’ 이동윤(61) 회장의 종아리를 보는 것은 차라리 유쾌하다. 마치 팔팔한 생선 두마리가 그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것 같다.

여명의 한강 고수부지는 그의 놀이터. 일주일에 4~5차례씩 두시간 정도 내달린다. 하루에 뛰는 거리는 약 15㎞. 거의 매일 하프 마라톤을 하는 셈이다. 한강을 따라 뛰기도 하고, 다리를 건너 남산을 한바퀴 돌아오기도 한다. 그리고 봄가을엔 일요일에 열리는 각종 마라톤 대회에 20여차례 출전한다. 군의관으로 근무하다가 대령으로 예편한 그가 개인 병원을 차린 것이 지난 95년. 그때부터 18년 동안 그는 한결같이 달렸다.

얼마나 달렸을까?

하루 15㎞씩 일주일에 네차례, 18년간 달린 거리에다, 풀코스 출전 150차례를 더하니 약 7만8000㎞. 그 거리면 서울~부산을 200여차례 왕복했고, 지구를 거의 두번 뛰어서 돈 거리이다.

당연히 물어봐야 했다. “무릎 연골은 괜찮나요?”

“아프면 뛸 수 있나요? 용불용설이 적용됩니다. 많이 쓸수록 단련되고 강해집니다.”

다시 물었다. “무릎 연골은 닳으면 재생이 안 된다는데요?”

마라톤 고수는 살짝 웃으면서 대답한다. “신체가 적응되면 고장이 안 납니다. 몸을 만들고 체력을 끌어올리면서 달려야 합니다. 이제 걸음마를 하는 아이가 뛸 수 없듯이, 마라톤 입문자가 선수처럼 뛰려니까 부상이 오는 겁니다.”

내친김에 풀코스 최고 기록을 물어보았다. “글쎄요. 3시간 7분쯤.” 3시간 7분 몇초인지는 기억이 안 난다고 한다. “그럼 풀코스는 모두 몇차례 완주했나요?” 또 돌아오는 대답은 “글쎄, 한 150차례 정도.”

그제야 깨달았다. 고수는 자신의 정확한 기록이나 완주 횟수를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을.

처음엔 의사 생활을 하며 쌓이는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달렸다. 대학 산악부에 들어가 등산에 빠졌다. 한때는 산악 마라톤에도 도전했다. 그러나 산악 마라톤은 무릎에 무리가 많이 느껴져 포기했다. 처음 마라톤 대회에 도전한 것은 1997년 춘천마라톤. 그 당시는 풀코스 참가자가 500명 정도였다. 수만명이 참가하는 지금과는 격세지감. 제대로 준비도 안 했다. 겁 없이 풀코스에 도전한 것이다. 반환점까지는 시원하게 뛰었다. 그다음은 뛰다가 걷다가 했다. 그래도 첫 기록은 3시간 37분. 첫 출전에 서브-4는 물론이고, 3시간 중반의 좋은 기록을 세웠다. 곧 마라톤이 생활의 일부가 됐다.

마라톤 동호인 사이트에 글을 써 달림이들의 조언자가 됐다. 달리면서 발생하는 각종 부상에 대한 처치와 예방에 대해 글을 썼다. 전국의 달림이들이 그에게 매달렸다.

2000년에는 전국의 달리는 의사를 불러모아 ‘달리는 의사회’를 만들었다. 마라톤 대회에서 발생하는 사고를 줄이기 위해, 대회에 출전해 응급상황에서 의사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하프 마라톤 이상 달린 경력이 있는 의사 회원만 800여명.

그 역시 마라톤 주로에서 응급환자를 처치한 적이 몇차례 있다.

“서울 시내를 관통하는 대회였어요. 출발한 뒤 15㎞ 지점에서 한 남성 출전자가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었어요. 응급조처를 했지만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고, 구급차를 불렀어요. 그런데 구급차가 30분이 지나서야 왔어요. 그동안 저도 뛰지도 못하고 발만 동동 굴러야 했어요. 결국 그 환자는….”

그의 표정에 찬바람이 돈다. “국내 모든 마라톤 대회는 예산을 절감하기 위해 응급조처를 외면하고 있어요.”

마라톤을 하다 쓰러지면 4분 이내에 응급조처를 해야 살아난다고 말하는 그에게 반문했다. “선진국은 그런 시스템을 갖추고 하나요?”

“안전한 마라톤 대회를 위해서는 1㎞마다 심장충격기를 갖춘 구급요원이 대기해야 하고, 5㎞마다 구급차가 배치돼야 합니다. 미국은 물론 일본에서도 이런 응급조처를 준비하고 마라톤 대회를 합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그런 준비를 한 대회는 없어요. 안전 무방비인 셈이죠.”

준비운동을 하는 그의 종아리에서 건강함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개인 병원 차린 뒤 
스트레스 풀려 달리기 시작 
하루 15킬로씩 1주 4차례 
18년간 지구를 두바퀴 돌았다 
욕심부리고 달리면 탈 난다 
내 몸에 맞게 조금씩 늘려가야

풀코스를 19번 뛴 기자가 달리기를 하며 가졌던 가장 큰 의문이 있었다. “달리면서 고통은 참아도 통증은 참지 말라고 했는데, 고통과 통증은 어떤 차이가 있나요?”

“통증은 내가 하고픈 행동을 아파서 못 하는 것이고, 고통은 불편감이 느껴지는 상태입니다.”

이 회장은 2003년부터는 소아암 환자들을 위한 자선 마라톤 대회를 매년 개최한다. 이미 수억원의 자선금이 소아암 환자들에게 전달됐다.

다시 물었다. “어떻게 달리는 것이 건강하게 달리는 겁니까?”

“초보자는 처음엔 아주 약하고 천천히 달려야 합니다. 10~15분 정도 달려봅니다. 매주 3~5분씩 늘려갑니다. 달리기 전에 준비운동 15분 하고, 20분 달리고, 정리운동 15분을 합니다. 그리고 몸의 유연성을 키우는 스트레칭을 해야 합니다.”

이 회장은 마라톤 초보자들에게 경고한다. “열심히 하면 되겠지 하고, 욕심부리고 달리면 분명히 탈이 납니다. 빠르게 달리면 몸의 신축성은 사라집니다. 부상을 입으면 바로 자신의 불행입니다.”

이 회장은 달리기가 주는 즐거움으로 ‘자신감’을 꼽았다. “달려서 건강해지면 내가 마음먹은 대로 살아갈 수 있잖아요. ‘9988234’(99살까지 팔팔하게 살다가 이삼일 누워 있다가 죽음)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이 회장은 동이 트는 한강변을 다시 달린다.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는다. 초원을 장악한 치타의 여유있는 내달림이 그의 뒤를 따른다.

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